Home>이슈&인사이트 리포트>문정훈 교수의 맛있는 CSV
문정훈 교수의 맛있는 CSV
* 이 게시물을 공유하기
제목 파마산은 없고,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만 있다. 작성자 문정훈 작성일 2017.06.17
볼로냐(Bologna). 이탈리아 북부의 이 도시는 두 가지로 유명합니다. 하나는 교육 - 1088년에 개교한,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볼로냐 대학이 있습니다, 그리고 '많이 먹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이 지역의 식당을 가면 점심 때부터 어마어마한 양의 코스 요리를 먹는 볼로냐 현지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이 지역 전통 식당의 테이블 위에는 꽤 큰 사기 그릇이 놓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그릇 안에는 치즈 가루가 가득 들어 있지요. 그리고 이 지역 사람들은 모든 음식에, 즉, 스프에도, 샐러드에도, 파스타에도, 피자에도, 쌀 요리에도 이 치즈 가루를 스푼 가득, 사람에 따라서는 대여섯 스푼을 뿌려서 먹습니다. 파르마산(Parmesan) 치즈?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정확한 이름은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Parmigiano-Reggiano)' 치즈입니다.

<이탈리아의 에밀리아 로마냐 주(州), 볼로냐 인근 지역의 식당에선 치즈 가루가 한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다.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다>

이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치즈를 줄여서 흔히 '파르미지아노' 치즈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만, 이탈리아 사람들, 특히 이 지역 사람들은 이 치즈를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라고 정확히 불러 주길 원합니다. 이 지역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표현은 '파르마산/파마산'입니다. 우리가 흔히 피자 위에 뿌려서 먹는 그 '파마산' 치즈 가루 말입니다. 볼로냐와 그 인근 지역의 식당에 와서 '파마산 치즈 주세요'하면, 별로 대접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이 지역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자신의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모방해서 짝퉁으로 만든 치즈를 파마산 치즈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는 파스타의 원료가 되는 듀럼 밀과 더불어 이 지역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식재료이며, 가루로 만들어 음식 먹기 직전에 뿌려서 먹는다. 짠맛과 함께 감칠맛을 내는 조미료 역할을 한다>


이 치즈의 이름에 등장하는 단어 '파르마(Parma)'는 지역 이름입니다. 이 파르마 지역이 이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의 원산지이지요. 파르마는 볼로냐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지역입니다. 13세기 경에 이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가 이 지역에서 처음 등장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습니다. 아래 지도에 나와 있는 것처럼, 파르마, 레지오 에밀리아, 모데나, 만투아, 그리고 볼로냐, 이 인근 다섯 지역에서 생산된 우유로, 그리고 반드시 이 지역에서 가공, 숙성해서 만들어야 합법적인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가 됩니다. 그 이외의 지역에서 이와 유사한 치즈를 만들어서 '파르미지아노'와 유사한 단어로 이름을 붙이면 불법입니다. 실제 2008년 독일의 한 치즈 회사가 이와 유사한 치즈를 독일에서 생산하고 '파마산' 치즈로 판매하다가 EU 법원의 명령으로 그 이름을 못쓰게 되었습니다. 짝퉁이라는 거지요.


<지도 노랗게 표시된 이태리 북부 파르마(Parma)와 그 인근 지역의 우유로, 그 지역에서 가공, 숙성해야지만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가 된다 (지도 출처: 위키피디아)>


<아침 일찍 배송 받은 지역의 신선한 우유를 깊은 통에 부어 넣고 유청(Whey)과 전통 균주를 넣고 몇 시간을 저어 꾸덕하게 만든다>

<깨끗한 천을 넣어 꾸덕해진 치즈 부분을 감싸서 동글동글 굴리며 유청과 분리해 낸다>


<치즈를 굳힌 후 최소 1년 이상 숙성고에서 숙성하여야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가 된다>

하지만 EU의 법이 유효하지 않은 이외의 지역에서는 여전히 파마산 치즈라는 이름으로 제조, 유통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중국에서도, 그리고 한국에서 파마산이라는 이름으로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와 유사한 짝퉁 치즈가 판매되고 있습니다. 실은 우리나라는 EU와 무역협정을 맺었기 때문에, EU 쪽에서 소송을 걸면 파마산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서 제조, 판매하는 치즈는 처벌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트에서 흔히 판매되는 파마산 치즈. 엄밀한 의미에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라 할 수 없고, EU 국가에서는 이 이름으로 판매하면 불법이다>

이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를 주로 피자에 뿌려 먹는 문화를 가진 미국에선 아예 처음부터 가루 형태로 포장하여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영어식 표현인 '파마산(Parmesan)'으로 판매하지요.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대부분 이 파르미지아노를 덩어리 형태로 판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먹기 좋은 형태로 조각 내어 와인과 함께 스낵처럼 먹기도 하고, 강판에 갈아서 음식 위에 뿌려 먹기도 합니다.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는 짠맛과 함께 폭발하는 감칠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미료처럼 음식에 쓰는 겁니다. 한국 음식에서 간장과 된장의 역할을 이탈리아에서는 이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가 하고 있는 거지요.


<커다랗고 딱딱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 휠을 칼만으로 쪼개어 잘라낸다. 이 치즈를 잘라내는 데에는 다양한 종류의 칼과 또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를 쪼개어서 잘라내는 기술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의 영상을 보시길>

https://www.youtube.com/watch?v=m3ZI15VjwEU



자, 그러면 짝퉁이 아닌 진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사는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마트에 가셔서 치즈 이름이 '파마산' 또는 '파르마산' 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치즈가 있다면, 일단 짝퉁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는 반드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Parmigiano-Reggiano)'라는 정확한 이탈리아어 표기와 치즈 그림이 검은색 라벨로 인쇄되어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아래에 보시는 대로 EU가 보증하는 빨간색 지리적 표시 마크가 붙어 있는 것을 집어야 합니다. 이 검은색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협동조합 로고와 빨간 색 EU 인증 지리적 표시 마크가 없으면 짝퉁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가루가 아닌 덩어리 형태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국내 마트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또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쉽게 구매 가능합니다.
 
<이태리어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라고 인쇄된 포장지와 함께 EU의 빨간색 지리적표시 인증 마크를 확인해야 한다>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를 매번 가루 형태로만 드셨다면, 이번엔 덩어리를 사서 강판에 성기게 갈거나, 혹은 작은 덩어리로 쪼개어서 간식이나 안주로 드셔 보십시오. 놀라운 감칠맛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2년 이상 오랜 기간 숙성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를 씹으면 찌르는 듯한 강렬한 맛과 함께 바삭거리는 가루의 느낌도 날 것입니다. 눈으로 보면 하얀색 가루처럼 보입니다. 이 것은 치즈 속의 아미노산이 오랜 기간 숙성되면서 결정화된 것입니다. 천연 조미료 그 자체죠. 그러니 맛이 없을 수가 있을까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를 가루 형태로 피자 위에만 올려 먹지 말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간식으로, 혹은 와인이나 맥주 안주로 먹어 보자. 궁극의 감칠맛이 느껴진다>